한국일보는 한국 언론사에서 여러 ‘최초’ 타이틀을 가진 신문이에요. 단순히 오래된 신문이라는 것을 넘어,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기자 공채 제도를 처음 도입한 곳이기도 해요. 창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한국일보의 굵직한 역사를 짚어보면 한국 언론 문화가 어떻게 자리 잡았는지도 함께 엿볼 수 있어요.
창간 배경과 초기 역사
한국일보는 1954년 6월 9일에 창간된 대한민국의 일간 신문이에요. 창간 과정이 조금 독특한데, 1954년 5월 임원규가 경영하던 태양신문사를 인수한 뒤 현재 자리에 사옥을 마련하고 이름을 한국일보사로 바꾼 것이었어요.
장기영이 발행인, 편집인, 인쇄인을 겸하며 사장으로서 1954년 6월 9일 창간호를 냈어요. 기존 신문사를 인수해 새 이름으로 재출발했다는 점에서, 한국일보의 출발은 완전한 창업이라기보다 재편에 가까웠어요.
기자 공채 제도 도입
한국일보가 한국 언론사에 남긴 가장 큰 발자취 중 하나는 기자 공채 제도예요. 1954년 8월 1일 기자 제1기 6명을 공개 채용한 이후, 한국일보는 정기적으로 기자를 공개 채용하는 방식을 이어갔어요.
이 관행은 이후 다른 신문사들로도 퍼져나가면서, 한국 언론계 전반에 ‘기자는 공채로 뽑는다’는 문화를 정착시키는 계기가 됐어요. 지연이나 학연에 의존하던 이전의 채용 관행과 비교하면, 공채 제도는 언론계 인력 구조를 바꾼 상징적인 변화였어요.
1960년대 침체기와 중앙일보의 등장
한국일보는 1964년 사주 장기영이 경제부총리로 입각하면서 신문사 운영에서 한 발 물러나게 됐고, 이 시기부터 하향세를 걷기 시작했어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65년 중앙일보가 창간되면서 여러 신문사의 기자들을 스카우트하는 일이 벌어졌어요.
이 과정에서 한국일보가 가장 큰 타격을 입었어요. 편집국 인원 25명과 업무·광고 분야 인원 상당수를 한꺼번에 잃으면서 신문사 운영이 크게 휘청거렸어요. 경쟁지의 등장이 기존 신문사의 인력 구조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였어요.
1968년 화재 참사와 계열 매체 확장
1968년 2월에는 사옥에 큰 화재가 발생해 건물이 전부 불타고, 사원 7명이 순직하는 참사를 겪었어요. 신문사 역사에서 가장 큰 인명 피해를 남긴 사건 중 하나로 기록돼 있어요.
어려움 속에서도 한국일보는 계열 매체 확장을 이어갔어요. 1969년 1월에는 『주간여성』을, 같은 해 9월에는 『일간스포츠』를 연달아 창간했어요. 또한 1969년 5월에는 로스앤젤레스에 미국지사를 설치하며 해외 진출도 병행했어요.
2세 경영 승계와 법인화
창업주 장기영은 1977년 4월 세상을 떠났고, 이후 맏아들 장재구가 경영을 승계했어요. 1978년 1월에는 회사 체제를 주식회사로 전환하면서 조직 구조를 정비했어요.
이런 승계와 체제 정비 과정을 거치며 한국일보는 종합 일간지로서의 위상을 유지해왔고, 스포츠 전문지 『일간스포츠』를 비롯한 계열 매체를 통해 언론사로서의 영역을 넓혀왔어요. 창간 이후 화재, 인력 유출, 경영 승계 같은 굵직한 사건들을 겪으면서도 한국 언론사에 기자 공채 문화를 남긴 신문사로 오늘날까지 평가받고 있어요.